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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 '종의 기원'을 집필하기까지의 과정은 흥미롭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영감을 받아 자연선택과 생존 경쟁의 개념을 발전시켜 수년간의 신중한 연구 끝에 1859년에 이르러 이론을 출판했다. 종의 기원 출판 배경, 자연 도태설과 생존 경쟁의 원리, 다윈의 젊은 시절과 비글호 탐사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종의 기원 출판 배경
다윈은 '종의 기원'의 서문에서 그 책을 집필하게 된 과정을 써 놓았다. 다윈은 비글 호 탐사에서 돌아온 후 자신이 관찰하고 기록한 것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하여 1837년부터 '종의 변화'에 관한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윈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가 쓴 '인구론'을 접하게 된다. 이 저서에서 맬서스는 '만일 인구가 조절되지 않는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25년 동안 인구는 배로 늘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식량도 고기도 물도 부족하여 마지막에는 비참한 생존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 글을 통해 다윈은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의 개념을 배우게 되었다. 이 두 개념은 다윈의 진화론의 중심적인 개념이 되었다. 1839년 이르러 다윈은 자신의 사실을 체계화하였다. 1842년 6월 '나의 이론'이라고 제목을 붙여 35페이지 분량으로 자신의 사상의 개요를 작성했다. 1844년 여름에 해당 개요에 면밀한 논증 자료를 붙여 230페이지 분량의 시론을 작성했다. 이 시론에는 '나에게 예기치 않은 죽음이 찾아왔을 때 출판해 달라.'는 부탁의 말까지 써 놓았다. 1844년 주요한 윤곽을 잡았음에도 책의 출판이 그로부터 15년이나 지나서 이루어진 이유를 알아보자. 첫째는 논쟁과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다윈은 자신의 학설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성격이 순박했던 다윈은 다른 사람에게 반감을 사는 것을 두려워했다. 두 번째는 다윈의 학문적인 신중성이다. 자신의 학설의 학술적 진실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학설이란 명확한 사실로부터 끌어내지 않는 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고 배워왔다. 진화는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증거로부터 추론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다윈은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윈은 한 편의 논문을 받게 된다. 1858년 여름 당시 말레이 군도에 머물고 있던 윌리스라는 사람이 보낸 논문이었다. 그 논문을 읽고 난 다윈은 깜짝 놀랐다. 지난 10여 년간 자신이 구상해 온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윈은 자신의 연구 계획을 포기했다. 그러나 친구 라이엘의 끈질긴 권유로 자신의 생각을 요약하여 윌리스와 공동으로 린네 학회지에 발표하게 된다. 다윈은 몹시 걱정을 했다. 윌리스가 공동으로 발표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윌리스는 조금도 불만 업이 자신의 진화론을 정리하여 '다위니즘'이라는 논제를 붙여 출판하여 진화론창시의 명예를 다윈에게 돌렸다. 이러한 윌리스의 태도는 학계의 미담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윈은 학회지에 자신의 이론 개요를 발표한 것을 계기로 좀 더 방대한 분량으로 작성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51세 되던 1859년 11월 24일 '종의 기원'을 출판하게 된다. 다윈은 생물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창조설을 부정하고 지금의 다양한 생물은 기존의 종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강조했다.
자연 도태설과 생존 경쟁의 원리
가축이나 조류를 사육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동물의 특수한 변이, 즉 사소한 변이라도 선택하여 짧은 시간 내에 매우 다른 종류를 만들어낸다. 이런 인위 도태에 위해 사람들은 수십 종의 개, 150여 종에 달하는 집비둘기 등을 만들어 낸다. 이런 현상이 자연계에서도 일어난다면 인위 도태에 의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자연도태에 의하여 최적자가 생존하고 부적자가 소멸할 것임을 입증한 것이 다윈의 자연 도태설이다. 자연 도태설을 이해하기 위하여 생존 경쟁을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윈은 생존 경쟁에 대해 '생존 경쟁은 모든 생물들이 증식하고자 하는 높은 비율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자연 수명이 얼마나 연장되든 간에 모든 생물들이 몇 개의 알이나 씨를 생산하는데 그 생명은 어떤 시기에 또는 어떤 계절에 그리고 어떤 해에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기하급수적 증가의 원칙에 따라 이들의 수는 급속히 증가하여 어떠한 나라도 이 많은 수를 먹여 사릴 수 없게 된다.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개체가 생산되기 때문에 어떤 개체와 다른 개체 사이에 생활 조건 속에서 생존 경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모든 동물계, 식물계에 적용되는 맬서스의 이론이다.'라고 설명한다. 다윈은 풀밭에 사는 늑대는 자연도태에 의해서 다리가 길고 뛰어다닐 기회가 적은 밀림 지대에 사는 늑대는 다리가 짧다고 지적한다. 독수리의 눈은 필연적으로 시력이 높아질 것을 요구한다. 시력이 약하면 먹이를 빨리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도태는 생물을 그 환경에 적응하도록 작용하지만 반드시 어떤 기관의 능률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도태는 반드시 우리들이 가장 좋다고 인정하는 것만을 보존시키지 않는다.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만을 보존시키며 그 이치를 보여준다.
다윈의 젊은 시절과 비글호 탐사
찰스 다윈은 일찍부터 광물이나 곤충, 새의 알 등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었다. 가족들은 단순한 시간 낭비로만 생각했다. 다윈의 아버지는 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다윈을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시킨다. 하지만 다윈은 의사가 될 마음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의학 강의는 정말 지겨운 시간이었다. 이후 다윈은 두 권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는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쓴 '남아프리카 여행기'와 존 허셜이 쓴 '물리학 입문'이었다. 훔볼트의 저서를 읽으며 다윈은 여행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었고 허셜의 저서로부터 추측과 사실을 연결 짓는 일의 어려움, 신중함과 대담함의 조화, 필요성을 배운다. 1831년 8월 다윈은 식물학자인 헨스로에게 해군의 조사선에 지질학자로서 동승해보지 않겠느냐고 편지를 받게 된다. 다행히 비글호에 탑승하게 되나 예정보다 길어져 탐사 기간이 무려 5년이나 걸리게 되었다. 비글 호 탑승은 다윈에게 세계 각지의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탐사에서 많은 새로운 사실을 목격하였는데 안데스 산 꼭대기 1만 4천 피트에서 찾아낸 바다에 사는 조개의 화석,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발굴한 현존 동물과 가깝고 절멸 동물인 포유류의 화석, 아메리카 산의 절멸한 말의 유물과 근자에 수입한 말이 번식하여 야생이 된 말, 칠레에서 대지진의 놀라운 위력,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특이한 변이를 한 도마뱀과 바다거북 등을 발견한다. 여러 관찰을 통해 다윈은 지각 변동, 종의 절멸과 생활 조건의 관계, 종의 변이와 생활 조건의 관계 등을 암시받는다. 이런 사실들을 낱낱이 기록하여 귀국했다. 귀국 즉시 다윈은 선상에서 기록한 노트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다윈의 머릿속에는 서서히 진화의 사상이 싹트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사상을 정리하고 발표하는 다윈의 노력으로 '종의 기원'의 책을 볼 수 있는 영광을 지금 누리는 것 같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