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슬픈 열대

    레비스트로스의 여정은 철학과 법학을 거쳐 인류학으로 이어졌습니다. 브라질의 토착 부족과의 만남을 통해 문명의 본질을 탐구하고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토착 사회를 슬픈 열대에 섬세하게 담아냈습니다. '슬픈 열대' 책에서 보여준 민족지와 지적 자서전과 레비스트로스의 인생, 문명 비판과 원주민 사회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슬픈 열대 : 지적 자서전

    '슬픈 열대'는 일종의 기행문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였던 1937년부터 1938년까지의 기간 중에 브라질 내륙 지방에 살고 있던 4개의 원주민 부족, 카두베오 족, 보로로 족, 남비콰라 족, 투피 카와히브 족에 관한 민족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단순한 민족지에서는 불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 체험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왜 민족학자가 되었는가 하는 내용들이 일종의 지적 자서전 형태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을 집필한 것은 브라질을 떠난 지 15년 뒤의 일이다. 이 저서에는 레비스트로스가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 망명하게 되는 과정이나 아시아 지역을 방문하였던 여행기도 여기저기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총 9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자 마르세유에서 배를 타고 뉴욕으로 밀항하기까지의 과정과 선상 여행 따위의 쓰라린 추억담이 회상 형식으로 쓰여 있다. 제2부에서는 1934년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게 되는 과정과 자신이 어떻게 민족학자가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특히 제7장의 일몰에서는 브라질로 가는 배 위에서 수평 선상의 대기와 구름의 변화에 대해 어떤 훌륭한 문장가 못지않은 섬세한 관찰력과 예리한 필치로 묘사를 한다. 제3부에서는 항해 과정이 계속되어 적도 부근의 무풍지대를 통과하면서 느끼는 신세계와 구세계 간의 희망과 몰락, 정열과 무기력을 표현한다. 처음으로 도착하게 되는 상파울루와 열대 지방에 대한 인상을 말한다. 제4부에서는 브라질에서의 생활과 현지 조사를 위한 예비 답사의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제5부에서 8부까지는 앞에서 말한 4개 부족들을 조사하는 과정과 각각의 원주민 사회의 문화가 소개, 분석되고 있다. 마지막 9부에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개인적 체험과 현지 조사의 내용들을 종합, 정리하면서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적 연구에서 직면하였던 문제점과 모순을 해결하려고 시도한다.

    레비스트로스의 인생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그는 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베르사유로 옮겨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부친과 숙부는 모두 화가였고 그의 할아버지는 베르사유의 유태교 율법 선생으로서 교회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비스트로스는 어려서부터 교회의 벽화나 성화들과 다른 명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또 그 자신도 일찍부터 그림, 조각, 골동품을 수집을 함으로써 회화에 대한 높은 안목과 식견을 가질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파리에 거주하였고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31년에는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자(23세)로 합격하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레비스트로스는 국립 중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다가 1935년에 선배인 브글레의 소개로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 사회학 교수로 취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학문적 진로에 있어 하나의 주요한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브라질에 체류하는 동안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아마존 강 유역의 원주민 사회를 답사하는 기회를 많이 갖게 된다. 이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1936년에는 처음으로 인류학적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레비스트로스는 영국과 프랑스 간의 통역 장교로 근무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미국으로 탈출하여 뉴욕의 신사회 조사 연구원에서 8년간 연구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많은 인류학자들과 접촉하는 한편으로 저명한 구조주의 언어학자였던 야콥슨과 학문적 대화를 통하여 구조 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했다. 1950년 파리 대학의 고등 연구원 6분과의 연구 교수로 취임한 레비스트로스는 짧은 기간 동안 아시아 지역을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연구와 저술 활동에 몰두했다.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 사회 인류학 연구실이 레비스트로스를 위해 특별히 개설된다. 이곳에서 사회 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구조주의 방법을 적용하여 신화학의 연구에 몰두한다. 이후 수많은 저서를 발표하였는데 그가 쓴 저서와 논문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그것 자체가 한 권의 방대한 책이 될 것이다.

    문명 비판

    레비스트로스는 본래 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의식에 대한 일종의 심미적 명상에 몰두하는 그 당시의 철학적 연구 풍토에 회의를 느꼈다. 그래서 다시 법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법학에서도 어떤 뚜렷한 학문적인 객관적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지적 갈등 끝에 인류학으로부터 비로소 지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인류학은 세계의 역사와 그 자신의 역사를 재결합시켜 주고 세계와 그 자신의 공유된 동기를 동시에 해명해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다양한 습관, 태도, 제도를 연구하는 인류학을 통하여 자신의 삶과 성격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브라질로 건너가 원주민 사회를 직접 대면되고 민족학적 조사가 시작된다. 그는 원주민 사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가 진보된 사회와 접촉으로 인해 변질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그것은 서구 문명이 원주민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레비스트로스는 그 침략성에 분노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실체를 탐구하도록 만들고 있는 민족학자로서의 자신의 직업의 역설에 통탄해한다. 그는 자신의 브라질 현지 조사가 바로 그런 실체를 찾아 지구의 끝에까지 갔던 것이라고 인식한다. '슬픈 열대'에는 저주받은 원주민 사회에서 느낀 비애감이 우울하게 표현되어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광대한 열대가 이미 황폐한 것임을 느낀다. 그는 그곳의 자연은 풍요롭지 못하며 원주민들은 생존의 한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아직까지 도기 제조나 직조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부족에게 선교사, 대농장 지주, 식민주의자, 정부기관의 직원 등이 현대 문명을 침투시켜 그 사회의 미묘한 균형을 깨뜨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사회가 자신의 기준으로 나머지 부분들을 재단하는 태도에 반대한다. 서구 사회의 관점에서 윈주 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낸다. 원주민 사회는 단지 서구 사회와 다른 하나의 사회라고 주장한다. 즉, 이 세상에서 더 우월한 사회는 없다는 것이다. '슬픈 열대'의 주제는 복합적이다. 문명 비판, 이국적인 것에 대한 환멸, 아마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탐구 등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비관주의적 어조로 지적 초탈과 정신의 평정을 강조할 뿐이다. 그에게 있어 악의 기원은 바로 문명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비스러운 조화의 구조를 가졌던 원시적 과거가 눈앞에서 파괴되고 소멸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원주민들이 발버둥 치고 있는 열대는 슬픈 것이다. 슬픈 열대를 보면서 브라질 토착 사회에서 서구 문명이 만들어낸 변화를 통해 문명이 반드시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