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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

    '논어'의 기원에는 다양한 이론이 있으나 대체로 공자 생을 마감한 후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세 가지 초기 버전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장우가 편한 20편의 논어이다. '논어'의 기원에 대한 고찰과 시대와 민중에 대한 깊은 사랑과 고민이 느껴지는 인문주의 정신과 사상, 공자의 삶과 유교의 깊은 영향력에 대해 알아봅시다.

    '논어' 기원 고찰

    '논어'를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후한 때 반고가 지은 '한서' 문예지를 살펴보면 공자가 죽은 후에 제자들이 모여 편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논어'라는 뜻은 '의논하여 편찬한 글'로 해석된다. 또 다른 고대학자들은 구체적으로 공자의 제자 이름을 거론하면서 편찬했다고도 한다.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내용에 관심을 더 가지면 좋겠다. '논어'에는 원래 3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 번째는 '노론, 노나라의 논어'이다. 노론은 노나라의 사람들이 전한 것으로 12편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제론, 제나라의 논어'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전한 것으로 노론보다 두 편이 더 많다고 한다. 세 번째는 '고론, 옛날의 논어'이다. 고론은 한나라 무제 말기에 공자의 옛날 집 벽 가운데서 발견된 것으로 고문자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피해 공자의 후손들이 벽 가운데에 숨겨둔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들 세 개의 원본들은 이미 전한 말기에 모두 없어졌고 전한 말에 장우라는 사람이 20편으로 편한 책이 지금까지 전하는 '논어'이다. 논어의 기본 문체는 대화체이다. 동양, 서양의 고전 중에는 대화체로 된 것이 많다. 대화체가 좋은 점은 책의 내용 자체가 주로 스승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공부한 내용이라 문체도 당연히 대화체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지루하지 않게 읽힐 수 있다. 당시 학문은 지금처럼 명확히 분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대화하는 식으로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뜻을 풀이하는 과정이 쉽지 않지만 읽기 쉽고 간결하여 수월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인문주의 정신과 사상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린 시절부터 유교의 기본 경전을 암기했다. 당시의 독서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부이며 그 기본은 책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암기하는 것이다. 지금도 한문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4서 3경은 모두 암기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이렇게 '논어'를 읽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동양의 고전을 접하게 되는데 공자나 맹자의 사상을 단순한 도덕과 윤리로 인식해 버리고 말았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공자의 사상은 세상을 구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다. 단순히 웃어른은 이렇게 섬기고 인사는 저렇게 하고 하는 도덕이나 윤리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상에는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일반 민중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들어 있다. 또 철학과 역사, 예술 등 당시 내려온 중국 문화의 최고 정수들이 들어 있다. 공자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학덕과 인덕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일반 민중들과 어울리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천하를 돌아다니며 보고 배우고 느끼면서 삶을 완성시킨 사람이다. '논어'를 읽을 때 핵심은 공자의 정신 즉, 인문주의, 인간주의적 정신을 새기면서 습득하는 것이 좋다. 이를 놓치고 나머지 중요하지 않는 것만 기억한다면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논어'를 볼 때는 차분히 시간을 내어 보면 좋다. 참 재미있는 책이다.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동양의 문화 속에 스며드는 동양의 정신을 이해하면서 바라봐도 좋다.

    공자의 삶과 유교의 깊은 영향력

    동양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가장 위대한 사람을 한 명만 뽑으라고 하면 아마 공자가 거론될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동양에서 공자의 지위는 확고하다. 공자는 2500여 년에 걸쳐 인류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왔다. 유교의 창시자이고 왕과 같이 위대한 사람이었다. 공자의 진짜 위대함은 그가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급이 나눠진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행동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처럼 즐거울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솔직함을 보여줬다. 그래서 더욱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공자는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는데 승전이라는 소나 양을 관리하는 일을 통해서였다. 공자가 관리한 가축들은 모두 보기 좋게 살이 쪘다고 한다. 그리고 위리라는 직책도 맡았는데 이 일은 장부를 정리하고 돈을 계산하는 회계 일이다. 자신의 맡은 바를 잘 수행했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또 낮은 직책의 일을 맡아보면서 일반 민중들의 생활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일반 민중들과 어울리면서 끊임없는 애정을 키워갔다. 귀족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가르침을 청할 때에도 마다하지 않고 지도를 해줬다. 최초로 대중교육을 실시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시대였다. 공자의 나라인 노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을 휘두르는 대부가 셋이 있었는데 공자는 그들이 하는 행동을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여 고향을 떠나 제나라로 갔다. 이것이 공자가 처음으로 주유천하,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행동을 했다. 그러나 제나라는 공자를 등용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몇 년 머문 후 노나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그러는 사이 공자의 학문은 더욱 깊어갔고 먼 지방에서 공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자는 정서적으로도 서서히 완숙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공자는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편찬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원대한 꿈을 제자들을 통해 실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태도를 받아들이며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깊이 있는 책들을 만들어낸 공자와 제자들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