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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책을 집필한 프로이트는 최면 요법의 한계를 극복한 자유 연상법을 개발했다. 그의 학설은 무의식 세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하며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이 글에서는 무의식의 복잡한 관계를 알려주는 꿈의 해석, 프로이트의 생애와 업적, 심리학과 사회과학에 영향을 준 정신 분석 이론에 대해 알아봅시다.
꿈의 해석 : 무의식과의 복잡한 관계
'꿈의 해석'에 포함된 내용의 대부분은 1896년 연구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간행된 것은 1899년 11월 4일이었고 출판 연도는 발행자에 의해서 1900년으로 되었다. 그런데 인간 사상의 위해한 고전의 하나로서 인정되고 있는 이 저작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참담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꿈의 해석은 초판 600부가 발행되었는데 다 판매하는 데 무려 8년이 걸렸다. 발행된 지 6주일 동안에 123부가 팔렸고 그다음 2년 동안 228부가 팔렸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책은 전 세계에서 프로이트의 가장 유명한 저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저작에는 프로이트의 꿈에 관한 이론이 남김없이 논술되어 있다. 무의식적인 심리 메커니즘에 관한 초기 이론이 풍부한 예증과 함께 확증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책을 자신의 저작 중 대표작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증명해 보이고자 한 것은 인간이 꾸는 모든 꿈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어떠한 꿈이나 꿈의 일부분은 과거의 사건과 결부되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는 그 사건을 꿈을 꾸기 전 24시간 안에 일어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인간의 꿈은 과거 사건의 단순한 재연이 아니다. 꿈은 통해서 잠재해 있거나 억압당한 무의식의 세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의 내용과 무의식의 내용 사이에는 복잡한 관련이 있다. 이런 관련을 밝혀 낼 수 있는 것은 자유 연상뿐이다. 연상을 계속해 나감으로써 억압당한 최근의 그리고 이미 지나간 사건에 대한 관념이 밝혀진다. 프로이트는 꿈이 나타나게 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꿈은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꿈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으로 프로이트는 압축, 대치. 극화, 상징화, 2차 가공을 제시한다. 먼저 압축에 대해 살펴보면 프로이트는 '꿈은 꿈이 지니는 사상이 넓고 풍부한 데 비하면 단순하고 빈약하고 간절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압축의 본질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의 꿈이 매우 많은 잠재의식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꿈이 몇 가지 잠재의식을 표현하는 과정을 프로이트는 중복 결정이라고도 표현한다. 프로이트는 새 모자를 사기 위해 친구와 함께 5번가를 걷는 꿈을 꾼 한 여성 환자의 예를 든다. 자유 연상법을 통해 이 여인이 그 전날 친구와 함께 5번가를 걸은 적이 있다는 것, 남편이 아파서 집에 누워 있는데 그 여인은 혹시 남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격정을 하고 있다는 것, 결혼 전에 알고 지내던 남자가 있다는 것, 그 여인은 모자라면 사족을 못 써서 많이 사고 싶지만 돈의 여유가 없다는 것, 그 여인이 꿈속에서 산 모자는 검은 모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 여인이 꾼 꿈이 담고 있는 잠재적 의식은 다음과 같다. 그 여인은 첫 번째 사나이와 결혼할 수 있는 자유로운 몸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남편에 의해 방해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남자와 결혼하였더라면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는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꿈속에서 그 돈을 씀으로써 자신의 혼인상, 경제상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과 현재의 남편의 권리 주장이나 그녀가 그에게 필요하다는 일이 그의 죽음에 의하여 끝난다는 사실을 표명하였던 것이다. 그 여인의 꿈에서 검은 모자는 상복에 쓰는 것으로 남편의 죽음과 첫 애인과의 결혼과 많은 돈을 갖고 싶다는 삼중의 욕구가 중복 결정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만약에 그녀의 남편이 죽고 그녀가 첫 애인과 결혼하게 된다면 그녀가 산 모자는 검은 모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인이 갖고 있는 잠재의식과 꿈의 내용은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꿈의 내용은 대단히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다. 이렇듯 하찮은 내용의 꿈이 격심한 홍분이나 감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반대로 무서운 혹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는 꿈이 사소한 의식을 나타내기 도고 하는 등의 꿈의 메커니즘을 대치라고 한다. 해석이 있기 전에는 꿈은 무의미하고 막연한 것이다. 이런 표면적인 꿈의 평범성은 압축과 대치의 결과이다. 꿈은 한 편의 젊은 영화와 같다. 꿈이 영화와 다른 점은 영화가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반해 꿈은 스토리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 꾸었던 꿈을 생각해 보면 꿈속에서는 생생하였던 것 같은데 막상 그 내용을 떠올리면 막연해진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프로이트는 '이러한 논리적 한계를 표현하는 능력이 꿈에 없는 이유는 꿈이 만들어지는 심적 재료의 성질 때문일 것이다. 회화나 조각 같은 조형 미술은 언어를 이용할 수 있는 시에 비하면 꿈과 똑같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들 미술이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한 때에 무력한 이유는 사용하는 재료의 성질에 그 원인이 있다.'라고 말한다. 꿈은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해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본래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관계를 프로이트는 극화라고 부른다. 꿈을 해석할 때 앞에서 예를 든 한 여인의 꿈에 등장한 검은 모자 같은 것이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런 종류의 것을 프로이트는 상징화라고 부른다. 그런데 상징화만으로는 꿈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꾼 꿈을 회상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반드시 자신의 꿈을 논리 정연하게 회상하고 전달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꿈은 논리 정연한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논리 정연하게 전달하려고 하면 가공이 불가피해진다. 프로이트는 이를 가리켜 2차 가공이라고 부른다. 이 2차 가공은 잠재의식의 내용을 왜곡시켜 꿈을 해석함에 있어서 과오를 범하게 한다. 꿈과 꿈의 해석에 관한 프로이트의 학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꿈은 억압되고 금지된 욕구가 분장하고 왜곡되어 표현된 것이다. 꿈의 전면적인 왜곡은 꿈의 작업의 메커니즘인 압축, 대치, 극화, 상징화, 2차 가공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수면 중인 상태에서도 무의식이 의식으로 진출할 때 검열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비록 꿈이지만 도덕적 판단 등에 의해 자신의 욕구가 그대로 드러나지 않고 다른 상징물로 대치되어 나타나거나 하는 것이다. 꿈의 생물학적 목적은 수면을 유지하는 데 있다. 꿈은 수면을 방해하는 관념이나 감정에 대한 가공을 허용하고 가공이 되지 않았다면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집을 깨울만한 자극을 잠든 채로 체험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만약 긴장이 도를 넘으면 악몽을 꾼다든가 하여 수면자는 잠을 깨고 말 것이다. 꿈이 수면을 지키는 데 성공하면 억압과 억압된 재료의 회귀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진 것이다. 꿈은 그 자체가 의미를 갖거나 시종 일관되거나 잠재의식을 조금이라도 필연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꿈의 내용은 수수께끼와 같다. 꿈은 외견상 황당무계하거나 비논리적이다. 여기에 해석이 가해져야 한다. 해석을 하려면 자유 연상을 통해 개인의 일상사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프로이트의 생애와 업적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프라이베르크의 모라비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으로 상당히 성공한 양모 장수였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유머와 인생의 불확실한 영고성쇠에 대한 회의, 유대 민족의 역사에 따라 도덕을 내세우는 습성, 자유주의와 자유로운 사고, 아내를 잘 돌보아 주는 성향을 전해 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감성적인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회고한다. 프로이트는 9세부터 학교에 다녔지만 3학년 때부터는 계속 수석을 차지했고 17세 때 우등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했다. 이 무렵 프로이트는 장래에 정치가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그 당시 유태인으로서 빈에서 종사할 수 있는 것은 실업가나 변호사 아니면 의사가 무난했기 때문에 의학 공부를 지원하게 되었다. 빈 대학 의학부에 진학한 프로이트는 에른스트 브뤼케 교수 밑에서 생리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브뤼케 교수는 헬름홀츠의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유기체인 사람에게도 적용하고 있었는데 프로이트는 이에 크게 심취하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25세가 되는 1881년 우수한 성적으로 의학부 최종 시험에 합격하여 학위를 받게 된다. 대학은 졸업한 후 프로이트는 얼마 안 되는 장학금을 얻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경 의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주재하는 사리페트리에르 병원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프로이트는 주로 히스테리에 대하여 연구를 했다. 샤르코는 히스테리를 일종의 신경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로이트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였다. 1886년 프로이트는 신경병 전문의로 개업하여 히스테리 환자를 관리했다. 이때 그는 친구 브로이어로부터 최면 요법에 의한 치료 경험에 대한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 연구를 하여 1895년 히스테리 연구를 발표했다. 브로이어와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멀리하게 되었다. 이후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법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최면을 걸지 않고도 최면을 걸었을 때와 같은 효과물 내도록 하는 요법이다. 최면 요법이 일시적으로 밖에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단점을 극복한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꿈에 대한 해석에 연구를 집중했다. 그 결과 1900년에 '꿈의 해석'을 발표했다. 1908년 프로이트는 미국 클라크 대학교 총장이며 실험 심리학자인 스탠리 홀의 초청을 받아 1909년 클라크 대학교 창립 20주년 기념식에 초대되었다. 이 사건으로 프로이트의 학설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 기념식에서 프로이트는 명예박사 하위를 수여받는 영광을 얻었다.
정신 분석 이론
프로이트의 학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하나는 그의 학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환자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성립한 것이다. 따라서 보통의 사람, 신경증이 없는 일반 사람에게 그의 학설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충동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시켰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대상을 인간의 내면적인 정신세계, 무의식 세계로 확장한 것이 대단하다. 프로이트 이전까지만 해도 무의식의 세계는 관찰이나 실험을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프로이트의 출현으로 인해 심리학의 주요 주제는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자신의 학설을 정신 분석이라고 요약했다. 학설의 영향은 심리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문 사회 과학 전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문화와 사회의 정신 분석 이론이 확대되어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문제를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그 사람의 특수한 결합의 문제라고 파악하였다. 사회와 문화의 퍼스낼리티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시회 심리학이나 경영 조직론을 비롯하여 정치학에 이르는 사회 과학의 혁신을 가져왔다. 정신 분석 철학에 대한 충격은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실존적 정신 분석에서 보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인간 이해, 바슐라르의 물질적 정신 분석에서 보는 세계 해석, 푸코나 라캉의 구조주의 등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프로이트 학설 혹은 프로이트주의는 20세기 사상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진하고 암암리에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